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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에도 치매국가책임제 있었더라면”

건강 코디네이터 사업단서 치매 어르신 돌보는 이영진씨

입력 2019년09월20일 18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로 소통할 수 있으면, 치매 속도는 늦출 수 있습니다.”

 

지난 16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2019 치매극복 수기 공모전’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영진 씨가 수기 말미에 쓴 글이다.

 

이 씨는 수기 ‘오늘, 나무를 그리다’에 치매환자의 집을 방문해 돌보는 ‘건강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느낀 감정과 과거 치매환자였던 어머니에게 마음을 다하지 못했던 그 시간을 반추하며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담아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무력하다. 죽음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는 내 아버지, 어머니 일 수 있고,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이영진 씨. 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 씨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치매는 남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랬던 이씨가 치매환자의 마음을 속속들이 읽기 시작한 것은 4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이다. 이씨는 지난 2017년부터 서울시 보람일자리 50플러스 건강 코디네이터 사업단에서 실시하는 건강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치매 환자를 지근거리에서 살피고 있다.

 

1주일에 이틀은 ‘재가어르신 방문인지 학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치매환자가 있는 집을 방문해 환자들의 인지학습을 돕거나 친근한 말벗이 돼 주고, 나머지 시간은 서울시 마포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작업치료사의 강의를 보조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치매환자의 감정변화와 흔들림없는 어르신들의 눈동자를 볼때마다 이씨는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떠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의 눈동자도 그랬어요.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 감정없이 지긋이 쳐다 볼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었지요. 가끔씩 나를 향해 ‘도둑년’이라고 막말을 하시거나 차갑게 대하면 나를 참 미워하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죠. 그럴때마다 상처가 컸고, 참 많이 울었어요.”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하고, 입맛이 떨어지는 어머니의 상태를 의심한 것은 다행히 이 씨였다. 방문을 열면 ‘왔냐’하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부터 무기력하게 잠에 빠져 있었고, 점점 힘들어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상태를 의심한 사람은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가정 도우미도,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남자 형제도 아닌 바로 이 씨였다.

이영진씨가 서울 마포구 치매센터에서 치매경증 어르신에게 치매예방을 위한 인지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치매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이 씨는 지난날 이해되지 않았던 각종 의문이 풀렸다.

 

담당의사는 이 씨에게 “어머니는 10년 전부터 치매가 진행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고학력자인 노인성 치매는 자폐적이고 복잡한 증상을 보이며, 자기 식대로 다양하게 머리를 쓰기 때문에 치매인지 가족들이 파악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놨다.

 

치매판정을 받은 이 씨의 어머니는 건강보험공단에서 70만 원을 보조받은 것 외에 생활비를 포함해 매월 300만 원 가까운 비용을 스스로 감당했다. 요양보호사는 100% 사비로 충당했다.

 

“엄마가 종종 요양보호사에게 많이 외롭고 악몽에 시달린다고 말씀하셨대요. 10년 전에도 지금처럼 국가가 치매를 책임져주는 제도가 있었더라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 씨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치매 어르신이 거주하는 집을 찾아가 인지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것도 외로움과 두려움을 홀로 이긴 과거 어머니의 마음이 읽혀져서다.

 

“처음에는 낯설어 마음을 열지 않던 어르신들이 나무가 그려진 도화지에 함께 색을 칠하고, 젊은 시절 좋아했던 찔레꽃을 틀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림을 보고 미소를 짓거나,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세요. 어르신들을 만나면서 알았지요. 그들은 본인의 아픔을, 외로움을 그저 알아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정부는 지난 2017년 12월부터 전국 256개 보건소에 설치된 치매안심센터에서 상담과 검진, 1대1사례 관리, 서비스 연결까지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해 치매 환자를 위한 혜택이 많아졌고, 치료 의료비 요양비 부담도 과거보다 현격히 낮아졌다. 주어진 혜택을 잘 찾고, 선택만 잘 한다면 가족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치매예방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이다.


 

“치매 교육을 받고, 치매 어르신을 접한 경험으로 그 어렵던 치매를 이제야 이해하게 됐어요. 엄마가 치매를 겪을때는 엄마와의 거리가 섬처럼 멀리 떨어져서 들리지도 않고, 아픔을 호소해도 알 수 없어 절망했었지요. 치매 어르신을 돌보면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어요. 치매는 치매 환자의 무표정 속에서도 인권이 있고,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그분들의 생도 숨어있는 신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글=박희숙 기자(smkim24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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