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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 박사의 ‘생명 사랑’

사상과 윤리관의 바탕은 ‘생명존중’, ‘생명 외경’에 있어

입력 2019년01월10일 10시50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이달은 ‘밀림의 성자’, ‘세기의 위인’, ‘평화의 사도’라고 불리는 슈바이처 박사의 생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슈바이처 박사는 저서 ‘문화와 윤리’에서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 속에 둘러싸인, 살려고 하는 생명체이다. 나의 생명을 대하듯 다른 생명을 대하라”며 높은 박애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슈바이처 박사의 사상과 윤리관의 바탕은 바로 ‘생명존중’, ‘생명 외경’에 있다.

 

슈바이처 박사는 독일령 상(上)엘자스에 있는 카이자스 베르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1875년 1월 14일에 태어났다. 그는 파이프 오르가니스트인 할아버지와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20대에 파이프 오르가니스트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으나 30세가 되던 해 의학공부를 시작해 7년 만에 학위를 받으며 중앙아프리카 서쪽에 있는 가봉공화국 랑바레네 밀림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그곳에 병원을 설립하고 현지 흑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 활동을 시작하여 전 세계인들의 큰 이목을 끌었다.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의사들의 자발적 봉사를 이끌어냈다. 거기에는 나병을 비롯해 말라리아, 열대성 이질, 심장병, 화상, 악성 감기 등에 걸린 흑인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었다.

 

슈바이처 박사는 열과 성을 다해 이 환자들을 보살폈다. 투철한 봉사정신의 발로라고는 하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현재 그에게는 ‘20세기 성자’, ‘원시림의 성자’, ‘암흑대륙의 구세주’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해박한 지식이나 권위를 자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윤리를 몸소 실천하며 앞장섰기에 이런 수식어를 얻을 수 있던 것이다.

 

‘모든 생명은 거룩하다’라는 기독교 사상에 뿌리를 둔 그의 생명 외경 사상은 1931년 자서전 ‘나의 삶과 사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생애와 업적은 국적과 인종을 떠나 모든 인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52년 ‘인류의 형제애’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1965년 90세의 나이로 랑바레네 밀림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유럽과 아프리카를 왕래하며 ‘봉사의 삶’을 살았다. 그의 육체는 이제 사라졌지만, 그 고결한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히 그를 기억하게 할 것이다.

정창국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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